메뉴보기

EBS 역사특강(HD) MY 공유하기

종방프로그램


  • 종방프로그램

다시보기

  • 21세기에 다시 보는 한국근현대사 2강- 일제식민통치와 독립운동 혹독한 강압 통치 속에서도 35년간 끈질기게 싸우며 독립을 염원했던 한민족. 하지만 그 피와 땀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우리의 독립운동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우리 힘으로 독립을 얻지 못했던 걸까. 일제강점기 하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살펴보며, 혹시 오늘날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본다.
    • 2014.02.06
    • 12485
    • 10
  • 21세기에 다시 보는 한국근현대사 1강- 동아시아 국제 정세.. 18세기 중엽, 동아시아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동아시아의 시장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와 일본, 조선 동아시아 3국은 서구 세력의 등장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가장 먼저 변화를 보인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1854년 미국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하고 불평등 조약을 체결한 후 서구 근대 문물에 충격을 받고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하게 된다. 그 결과 일어난 일이 바로 1867년의 메이지 유신이다. 이는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체제를 세우는 것으로, 지방분권체제인 막부체제를 마감하고, 서구의 근대적인 문물은 물론 제도까지 도입하는 움직임이었다. 청나라 역시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피해갈 수 없었다. 청나라는 영국과의 아편전쟁의 결과로 1860년 베이징 조약을 맺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기존의 중화주의에서 벗어나 중국의 정신은 지키되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양무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은 아직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흥선대원군이 정국을 주도했던 조선은 강력한 쇄국정책을 펼쳤으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연이은 서구 세력의 침입은 조선의 빗장을 더욱 굳게 닫게 만들었다. 하지만 요지부동인 조선의 내부와는 달리 조선 밖의 국제 정세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동아시아 지역을 눈여겨 본 나라 중 하나는 러시아였다. 부동항이 필요했던 러시아는 베이징 조약을 중재한 대가로 연해주를 할양받았고, 이는 만주 지역에 이권이 걸려있던 모든 열강 - 영국, 중국, 프랑스, 미국 등 - 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연해주와 접해있는 조선의 지정학정 위치가 중요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청나라와 일본의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체결, 조선을 청나라의 영향권에서 빼 내 자신의 대륙 침략 기지로 삼기 위한 야욕을 진행시키기 시작했다. 강화도 조약으로 조선에서도 개혁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에 수신사를 보내고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식군대와 신식군대의 차별에 반발해 일어난 임오군란은, 흥선대원군을 복권시켜 역사의 흐름을 다시 과거로 되돌렸고, 개화파들이 추진한 갑신정변은 3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지배층의 무능력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졌고, 이는 조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청나라와 일본에게, 조선에 군대를 동원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되어버렸다. 마침내 청나라와 한 판 대결에 나선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조선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한 데 이어 러일전쟁에서도 승전하며 마침내 한반도를 식민지로 거느리게 된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맺으며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 이 비참한 역사의 가장 큰 원인은 스스로의 힘을 키우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들의 힘에 기대려했던 지배층의 무능력이었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반도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일본과 중국, 러시아, 미국이라는 강대국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으며 우리의 운명은 이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100여 년 전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며, 우리가 그때 겪은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었으며, 오늘날 국제 정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 2014.01.30
    • 18022
    • 7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