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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특강]『한국전통의 미』곽동해 교수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13.12.16 17:29
조회수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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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 

곽 동해 교수 /  한서대학교 콘텐츠 연구소  

 

 

[TV] 매주 목요일 밤 2315(본)

       매주 금요일 낮 12시 15분 (재)

[PLUS2] 매주 일요일 낮1030()  

  

 

강의 미리보기  

 

한국전통의 미 

"단청Ⅰ" 

 

  궁궐이나 사찰에서 천장, 기둥, 벽 등에 채색된 현란한 무늬, 문양, 그림 등을 볼 수 있는데 이와 비슷한 채색하는 모든 것들을 총칭하여 단청이라고 부른다.   

   단청은 청, , , , 흑색의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사용하며, 오색(五色)은 동양의 전통적인 우주철학인 오행설(五行說)과 오방(五方)사상과 관계가 깊다 

   선조들은 어떤 이유로 목재건물에 단청을 칠하기 시작했을까? 단청이 칠해진 이유를 총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건축물의 내구성을 강화한 수명연장의 목적. 둘째, 왕권의 권위와 사찰의 장엄한 상징성 강조. 셋째, 목재 재질의 조악(粗惡)성을 은폐하기 위한 목적. 넷째, 기념비적 건축물의 전시 목적이다. 선조들은 위와 같은 복합적인 이유들로 건물에 단청을 칠하기 시작했다 

   단청의 기원은 중국 서한시대(기원전202~서기9) 묘의 부장품인 가옥형 토기에 칠해진 단청을 근거로 고대에도 단청이 사용된 점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단청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문헌사료들을 통해 단청이 조선시대에도 활발하게 장식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안료는 용매에 용해되지 않은 유색 미립자상의 무기 또는 유기화합물을 접착제와 혼합한 것을 말하는데 단청을 장식할 때 채색되는 물감을 안료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단청 안료는 진채(眞彩) · 당채(唐彩) · 암채(岩彩) · 이채(泥彩)라 하여 광물질 무기염류를 사용하였는데, 보통 중국에서 수입하였다. 대부분의 수입 안료들은 높은 가격으로 중요한 부분의 채색에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도 단청장식 자체가 비싸, 함부로 장식할 수 없었다.

   안료의 종류를 살펴보면  

적색계열 : 반주홍, 당주홍, 왜주홍, 주토, 석간주, 황단, 편연지, 장단, 주홍  

녹색계열 : 뇌록, 하엽, 당하엽, 향하엽, 석록, 삼록, 대록, 양록  

청색계열 : 석청, 청화, 삼청, 이청, 대청, 심중청, 양청 

황색계열 : 석자황, 석웅황, 동황, 당황 

흑백계열 : 진분, 정분, 당분, 진묵, 당묵, 송연  

기타재료 : 아교, 교말, 법유, 명유 

등으로 한 가지 색도 다양한 종류의 안료들로 분류되는데 원산지, 가공법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단청은 화려한 장식과 단조로운 장식으로 총 1~5등급으로 조형양식이 분류되는데 높은 등급일수록 화려한 양식을 사용한다. 가장 낮은 등급인 5등급의 가칠단청부터 살펴보면 가칠단청은 부재의 영구 보전을 주목적으로 하는 양식이며 , 선이나 각종 문양을 전혀 장식하지 않고, 몇 종류의 색으로만 2회 이상 칠하여 마무리한 방식이다. 4등급의 긋기단청은 가칠단청에서 한 단계 진보된 것으로 건축물에 바탕칠을 한 후 먹선, 분선을 그어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3등급의 모로단청은 목부재이 끝 부분에만 머리초 문양을 장식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모로'라는 말이 '머리'의 발음이 변이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등급 얼금단청은 조형 양식은 최고 등급인 금단청과 모로단청의 절충형으로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양식이다. 다른 말로 '금모로단청'이라고도 한다. 1등급인 금단청은 최고 등급의 장엄 양식으로 비단 금자를 붙인 이유는 비단에 수를 놓듯이 모든 부재를 복잡한 문양과 화려한 채색으로 장식하기 때문이다. 금문이 추가로 장식되는데, 이 때문에 금단청으로 불리게 되었고 보통 건물의 중요도에 따라 등급별로 양식을 나누어 사용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단청의 기록을 통해 화려한 자태의 단청을 상세하게 배워보도록 하자. 

 

 

한국전통의 미 

"단청Ⅱ " 

 

 



   궁궐이나 사찰에서 천장, 기둥, 벽 등에 채색된 현란한 무늬, 문양, 그림 등을 볼 수 있는데 이와 비슷한 채색하는 모든 것들을 총칭하여 단청이라고 부른다.

   단청문양은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주술적·종교적·예술적 길상문양을 총망라하여 다양한 종류의 문양으로 남겨졌다. 크게 분류하면 기하문, 덩굴문, 자연문, 식물문, 화문, 동물문, 종교문, 길상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대표적인 단청문양 몇 가지를 살펴보면 

연꽃 - 한국단청에서 가장 많이 채화되는 꽃문양으로 브라만교, 유교, 불교, 민간신앙에서 사용되며 각각 종교에서 상징되는 의미가 다르게 나타나는 문양  

모란 - 꽃잎이 풍성하고 화사한 생장의 특징으로 꽃 중의 왕으로 칭송되며 부귀를 의미하며 관직과 최고의 지위를 나타내며 왕실의 중요 의례인 혼례, 장례 의식에서 많이 사용된 문양 

국화 - 예로부터 장수를 상징한 꽃으로 국화에서 나오는 물인 국화수의 효능을 근거로 사용하였으며 덕행을 쌓고 속세를 떠난 군자를 의미한 문양 

주화 - 꽃잎이 네 개인 붉은색 꽃의 형상으로 감꼭지에서 시작되었으며 중국의 대표적 길상문인 사사여의(事社如意) : 모든 일이 뜻한 바와 같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며 감나무의 장점인 오상(五常), 칠절(七絶)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장식되는 문양 

 보상화 - 불교에서 숭앙되는 이상화로 만다라화라고도 불리며 불교의 장엄적 상징성을 나타낸다. 연꽃문양과 결합된 팔메트 잎의 변형, 동양의 고대미술에서 연꽃문양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문양 

- 국가에서는 임금을 상징하고 불교에서는 불법의 수호를 의미하였고 용이 아홉 마리의 자식을 두었다는 불교의 설을 통해 아홉 자식들이 각각 의미하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 문양  

봉황 - 중국에서는 여제(女帝)를 상징하고 조선에서는 임금을 상징하였으며 정치를 잘하여 태평성대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사용된 문양  

거북 장수와 임금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된 문양 

박쥐 - 중국에서 박쥐 복()자와 복 복()자는 동음동성으로 복을 상징하는 문양

가릉빈가 불교 사찰의 불전을 이상화하고 장엄하기 위한 의도로 사용된 문양

귀면 -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의미로 건축단청에서 즐겨 사용되는 문양 

주의 - 오직 불교사찰에서만 사용된 단청문양으로 더럽혀짐을 방지하기 위해 기둥의 상부에 치장된 문양  

이러한 문양 밖에도 수많은 문양들이 단청으로 사용된다. 다양한 의미를 상징하는 문양은 시대에 따라 생성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연화머리초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독창적인 단청 문양으로 머리초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연화머리초의 문양의 특징으로는 과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문양이 단순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연화머리초는 연꽃과 석류가 섞여있는 독특한 형태의 문양이다. 왜 연화머리초는 연꽃과 석류의 문양이 결합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그 기원을 살펴보면 먼저 한반도의 고구려 시대의 통구 오회 5호분 벽화와 백제 무녕왕릉의 금제관장식에서 연꽃과 연밥, 석류 등이 조합된 형태의 모형을 발견할 수가 있다. 또한 중국에서 더 오래된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발견할 수 있다. 중국 북송 시대(北宋時代 960~1126) 이계(李誡)가 편찬한 토목건축 관련 저서인 영조법식(營造法式)에서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석류의 원초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석류는 수꽃과 암꽃이 같이 피는 양성화라는 신기한 특징이 있다. 영조법식(營造法式) 오채편장(五彩遍裝)해석류화(海石榴華) 도상을 살펴보면 석류의 암꽃과 수꽃, 그리고 열매가 사차원적으로 표현되어 현재의 연화머리초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사료에서 연꽃과 석류가 결합된 원인을 정확히 찾을 수 있는데 이번 단청 강연을 통해 연화머리초의 기원의 비밀을 풀어보는 시간을 갖자.

 

 

 

한국전통의 미 

"단청Ⅰ" 

 

  궁궐이나 사찰에서 천장, 기둥, 벽 등에 채색된 현란한 무늬, 문양, 그림 등을 볼 수 있는데 이와 비슷한 채색하는 모든 것들을 총칭하여 단청이라고 부른다.   

   단청은 청, , , , 흑색의 다섯 가지 색을 기본으로 사용하며, 오색(五色)은 동양의 전통적인 우주철학인 오행설(五行說)과 오방(五方)사상과 관계가 깊다 

   선조들은 어떤 이유로 목재건물에 단청을 칠하기 시작했을까? 단청이 칠해진 이유를 총 4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건축물의 내구성을 강화한 수명연장의 목적. 둘째, 왕권의 권위와 사찰의 장엄한 상징성 강조. 셋째, 목재 재질의 조악(粗惡)성을 은폐하기 위한 목적. 넷째, 기념비적 건축물의 전시 목적이다. 선조들은 위와 같은 복합적인 이유들로 건물에 단청을 칠하기 시작했다 

   단청의 기원은 중국 서한시대(기원전202~서기9) 묘의 부장품인 가옥형 토기에 칠해진 단청을 근거로 고대에도 단청이 사용된 점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단청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조선왕조실록과 여러 문헌사료들을 통해 단청이 조선시대에도 활발하게 장식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안료는 용매에 용해되지 않은 유색 미립자상의 무기 또는 유기화합물을 접착제와 혼합한 것을 말하는데 단청을 장식할 때 채색되는 물감을 안료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단청 안료는 진채(眞彩) · 당채(唐彩) · 암채(岩彩) · 이채(泥彩)라 하여 광물질 무기염류를 사용하였는데, 보통 중국에서 수입하였다. 대부분의 수입 안료들은 높은 가격으로 중요한 부분의 채색에 사용되었고 조선시대에도 단청장식 자체가 비싸, 함부로 장식할 수 없었다.

   안료의 종류를 살펴보면  

적색계열 : 반주홍, 당주홍, 왜주홍, 주토, 석간주, 황단, 편연지, 장단, 주홍  

녹색계열 : 뇌록, 하엽, 당하엽, 향하엽, 석록, 삼록, 대록, 양록  

청색계열 : 석청, 청화, 삼청, 이청, 대청, 심중청, 양청 

황색계열 : 석자황, 석웅황, 동황, 당황 

흑백계열 : 진분, 정분, 당분, 진묵, 당묵, 송연  

기타재료 : 아교, 교말, 법유, 명유 

등으로 한 가지 색도 다양한 종류의 안료들로 분류되는데 원산지, 가공법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단청은 화려한 장식과 단조로운 장식으로 총 1~5등급으로 조형양식이 분류되는데 높은 등급일수록 화려한 양식을 사용한다. 가장 낮은 등급인 5등급의 가칠단청부터 살펴보면 가칠단청은 부재의 영구 보전을 주목적으로 하는 양식이며 , 선이나 각종 문양을 전혀 장식하지 않고, 몇 종류의 색으로만 2회 이상 칠하여 마무리한 방식이다. 4등급의 긋기단청은 가칠단청에서 한 단계 진보된 것으로 건축물에 바탕칠을 한 후 먹선, 분선을 그어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3등급의 모로단청은 목부재이 끝 부분에만 머리초 문양을 장식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모로'라는 말이 '머리'의 발음이 변이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등급 얼금단청은 조형 양식은 최고 등급인 금단청과 모로단청의 절충형으로 화려한 채색이 돋보이는 양식이다. 다른 말로 '금모로단청'이라고도 한다. 1등급인 금단청은 최고 등급의 장엄 양식으로 비단 금자를 붙인 이유는 비단에 수를 놓듯이 모든 부재를 복잡한 문양과 화려한 채색으로 장식하기 때문이다. 금문이 추가로 장식되는데, 이 때문에 금단청으로 불리게 되었고 보통 건물의 중요도에 따라 등급별로 양식을 나누어 사용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단청의 기록을 통해 화려한 자태의 단청을 상세하게 배워보도록 하자. 

 

 

한국전통의 미 

"단청Ⅱ " 

 

 



   궁궐이나 사찰에서 천장, 기둥, 벽 등에 채색된 현란한 무늬, 문양, 그림 등을 볼 수 있는데 이와 비슷한 채색하는 모든 것들을 총칭하여 단청이라고 부른다.

   단청문양은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주술적·종교적·예술적 길상문양을 총망라하여 다양한 종류의 문양으로 남겨졌다. 크게 분류하면 기하문, 덩굴문, 자연문, 식물문, 화문, 동물문, 종교문, 길상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대표적인 단청문양 몇 가지를 살펴보면 

연꽃 - 한국단청에서 가장 많이 채화되는 꽃문양으로 브라만교, 유교, 불교, 민간신앙에서 사용되며 각각 종교에서 상징되는 의미가 다르게 나타나는 문양  

모란 - 꽃잎이 풍성하고 화사한 생장의 특징으로 꽃 중의 왕으로 칭송되며 부귀를 의미하며 관직과 최고의 지위를 나타내며 왕실의 중요 의례인 혼례, 장례 의식에서 많이 사용된 문양 

국화 - 예로부터 장수를 상징한 꽃으로 국화에서 나오는 물인 국화수의 효능을 근거로 사용하였으며 덕행을 쌓고 속세를 떠난 군자를 의미한 문양 

주화 - 꽃잎이 네 개인 붉은색 꽃의 형상으로 감꼭지에서 시작되었으며 중국의 대표적 길상문인 사사여의(事社如意) : 모든 일이 뜻한 바와 같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며 감나무의 장점인 오상(五常), 칠절(七絶)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장식되는 문양 

 보상화 - 불교에서 숭앙되는 이상화로 만다라화라고도 불리며 불교의 장엄적 상징성을 나타낸다. 연꽃문양과 결합된 팔메트 잎의 변형, 동양의 고대미술에서 연꽃문양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문양 

- 국가에서는 임금을 상징하고 불교에서는 불법의 수호를 의미하였고 용이 아홉 마리의 자식을 두었다는 불교의 설을 통해 아홉 자식들이 각각 의미하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 문양  

봉황 - 중국에서는 여제(女帝)를 상징하고 조선에서는 임금을 상징하였으며 정치를 잘하여 태평성대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사용된 문양  

거북 장수와 임금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된 문양 

박쥐 - 중국에서 박쥐 복()자와 복 복()자는 동음동성으로 복을 상징하는 문양

가릉빈가 불교 사찰의 불전을 이상화하고 장엄하기 위한 의도로 사용된 문양

귀면 -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의미로 건축단청에서 즐겨 사용되는 문양 

주의 - 오직 불교사찰에서만 사용된 단청문양으로 더럽혀짐을 방지하기 위해 기둥의 상부에 치장된 문양  

이러한 문양 밖에도 수많은 문양들이 단청으로 사용된다. 다양한 의미를 상징하는 문양은 시대에 따라 생성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연화머리초는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독창적인 단청 문양으로 머리초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연화머리초의 문양의 특징으로는 과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문양이 단순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연화머리초는 연꽃과 석류가 섞여있는 독특한 형태의 문양이다. 왜 연화머리초는 연꽃과 석류의 문양이 결합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그 기원을 살펴보면 먼저 한반도의 고구려 시대의 통구 오회 5호분 벽화와 백제 무녕왕릉의 금제관장식에서 연꽃과 연밥, 석류 등이 조합된 형태의 모형을 발견할 수가 있다. 또한 중국에서 더 오래된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발견할 수 있다. 중국 북송 시대(北宋時代 960~1126) 이계(李誡)가 편찬한 토목건축 관련 저서인 영조법식(營造法式)에서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있는데 석류의 원초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석류는 수꽃과 암꽃이 같이 피는 양성화라는 신기한 특징이 있다. 영조법식(營造法式) 오채편장(五彩遍裝)해석류화(海石榴華) 도상을 살펴보면 석류의 암꽃과 수꽃, 그리고 열매가 사차원적으로 표현되어 현재의 연화머리초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사료에서 연꽃과 석류가 결합된 원인을 정확히 찾을 수 있는데 이번 단청 강연을 통해 연화머리초의 기원의 비밀을 풀어보는 시간을 갖자.

 

 

 

 

한국전통의 미,  

울림의 미학 종 1  

 

우리는 매해 섣달 그믐날이 되면,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한다. 이처럼 종은 오늘날까지 일상 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 종은 훨씬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으며, 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식구였다.

이러한 종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의미를 담아 변주해 왔다.

종의 시원은 소리를 내는 악기에서 출발한다. 고대인들은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종을 이용해 다양한 소리를 내게 하여 연주했다. 동시에, 종은 단순한 의미의 악기를 넘어 복을 기원하고 왕족이나 제후의 평안을 염원하는 신성한 존재이기도 했다.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인도의 불교와 결합하면서 종을 ‘부처의 맑은 소리’를 담은 존재로 여겨, 중생을 구제하고 부처를 기리는 의미가 담기는 중요한 종교 도구로 사용한다. 도교에서도 ‘도종’이라고 하여, 도를 깨우치는 도구로 중요하게 여겼다. 또한 종은, 성문을 열고 닫거나 통금 시간을 알리는 실용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같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종은 나라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종은 종 몸통 부분에 아름다운 문양을 넣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여음이 길고, 주파수가 비슷한 두 개의 다른 파동이 서로 간섭해 새로운 합성파가 만들어지는 ‘맥놀이 현상’이 두드러진다.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종인 상원사 동종이나 성덕대왕 신종을 보면, 종신에는 다양한 문양이 그려져 있고 종걸이에는 한 마리의 용이 장식돼 있다. 고려시대로 접어들면,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의 전통양식과 중국의 양식이 혼합된 한중 혼합 양식이 나타나게 된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종 제작이 위축되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승병들의 활약이 인정받아 다시 종 제작이 활기를 띠며, 종 양식 역시 중국 양식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전통 양식을 되찾았다.

중국의 종은 우리나라와 달리 종신에 승복의 가사를 본 딴 가사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종 윗부분이 둥그런 형태를 띠고 있고, 종걸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자리잡은 쌍두용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종 아랫부분은 곡선으로 제작되었다. 명조의 영락제가 제작한 영락대종의 경우 종신에 가사무늬 대신 금강경을 빼곡히 새겨 넣었는데, 이는 왕좌를 찬탈했다는 비난을 잠재우고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볼 때, 당시 종이 얼마나 큰 의미와 역할을 가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종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종으로는 보실사 명동종(당), 숭명사 명철종(송) 등이 있다.

일본의 종은 중국 진나라 때 제작돼 지금은 일본 나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진태건7년 명종’이 시초이다. 일본 종은 컵을 엎어놓은 형태로, 종신에는 십자형의 가사무늬가 있고 상부에는 많은 수의 유두가 있으며 종걸이는 쌍두룡으로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일본에서도 종은 기득권층의 권세를 나타내는 수단이었는데, 일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전대에 만들어진 방광사 종을 배제하고 자신을 기리는 지문원 종을 새롭게 제작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종으로는 당마사의 종, 평등원 종, 지문원 종 등이 있다.

미얀마의 사찰에는 최소 3개 이상의 종이 걸려 있으며, 방문객들은 이 종을 모두 치고 들어가야 한다. 부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왔다는 일종의 인사로 해석된다. 미얀마의 만델라이에 있는 마하무니 파고다 사원의 종을 보면, 종 하단부가 서양의 종처럼 벌어져 있고, 종걸이에는 악한 것을 물리치고 사원을 보호한다는 전설 속의 사자인 상하가 조각돼 있다. 종신에 문양은 거의 없다. 종구가 서양의 종과 비슷한 형태를 띠는 것은, 미얀마가 영국의 오랜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서양의 종 양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은 여러 개의 종을 일렬로 매달아 놓은 것이 특징이다. 종마다 경문이 써 있으며 방문객들은 이 종을 일일이 쳐야 하는데, 종을 치는 것은 경문을 읽었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기도를 드리는 셈이다. 종걸이에는 4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 용은 부처를 수호한다는 나라 신(神)을 의미한다.

서양의 종은 대부분 성당 옆에 있는 큰 종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양의 종은 여러 개의 종이 함께 매달려 있으며, 기계 장치를 사용해 이 종들이 동시에 울리는 구조이다. 따라서 여음은 거의 없다. 나라 또는 시대별로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 동양과는 달리 서양은 대부분의 종 양식이 일정하다. 이는 내부의 추를 이용해 종을 치는 특성상 종이 일정한 두께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종은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복을 기원하고 희망을 염원하는 중요한 의식구였다. 고대인들에게 때로는 신을 향한 기도였고 때로는 평안을 구하는 염원이었던 종.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해 온 종의 역사와 의미를 알아보자.


 

 

한국전통의 미  

울림의 미학 종 Ⅱ  

 

때로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의 의미로, 때로는 소망을 염원하는 의식구로 사용됐던 종. 따라서 종은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의미체계를 살펴볼 수 있는 상징물들로 장식되곤 했다. 우리나라의 종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된 양식으로 주조되어 왔다.

신라시대의 종은 종신에는 비천상이나 연화문 등이 부조됐고, 종걸이는 한 마리의 용과 음통으로 이뤄졌다. 고려시대의 종은 어깨 부분에 입화 장식이 있는 것이 특징이고, 조선 초기와 중기에는 중국 양식이 결합된 한중혼합양식이 나타났다가, 후기가 되면 다시 전통 양식이 부활한다.

이처럼 시대에 따라 종의 조형 양식은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이 변화 속에서 바뀌지 않고 명맥을 이어온 부분이 있다. 바로 음통(音筒)이다. 종걸이 부분에 위치한 음통은 또한 우리나라 종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의 종을 보면, 보통 용이나 전설 상의 동물들이 두 마리 이상 짝을 지어 종걸이를 형성하고 있다. 이같은 종걸이의 형태는 종의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데 이상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 마리의 용과 음통으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 조상들은 종의 평형을 포기하면서까지 이같은 형태의 종걸이를 고수한 것일까?  



많은 학자들이 우리나라 종에서 음통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역할을 알아내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해 왔다. 이 중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 용종기원설과 만파식적 상징설이다. 용종기원설은, 중국 고대에서 사용된 용종과 우리나라 종의 형태적 유사성에 착안하여, 이 용종에서 파생됐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하지만 용종은 중국에서조차 기원 후에는 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7세기 경 주조된 우리나라 종과 시대적 간극이 너무 크다는 허점이 있다. 만파식적 상징설은 7세기 중반 형성된 ‘만파식적 설화’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음통이라는 주장이다.

만파식적 설화는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로, 신라 신문왕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문왕이 바다의 용으로부터 대나무를 하나 얻게 되는데, 이 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자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는 개며, 바람이 잦아지고 물결이 평온해졌다. 왕은 크게 기뻐하며 이 피리에 ‘만 가지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이 담긴 ‘만파식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당시는 삼국이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팎으로 나라가 시끄럽고 정세가 혼란스러웠다. 따라서 이 만파식적 설화는 신라의 부국강병과 나라의 평화를 기원하는 신라인들의 소망이 담겼다고 볼 수 있다. 이 소망을 종에 새겨넣었다는 것이 만파식적 상징설의 핵심이다. 즉, 용이 대나무를 갖고 바다에서 막 솟구쳐 오른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한 마리의 용과 음통(대나무)으로 이뤄진 종걸이라는 것이다. 음통마다 두드러지게 보이는 마디는, 바로 음통이 대나무를 의미한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기원했던 사람들의 소망. 그리고 그 마음을 아름답고 창의적으로 표현해 낸 예술작품, 종.

우리나라 종에만 있는 특징인 음통을 통해, 고대인들의 의식세계와 소망, 그리고 우리의 독창적인 예술성까지 파악해본다.


강의별 주제 

 

1강 한국전통의 미 - 단청 Ⅰ

 

2강 한국전통의 미 - 단청 Ⅱ

 

3강 한국전통의 미 - 울림의 미학, 종 Ⅲ

 

4강 한국전통의 미 - 울림의 미학, 종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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