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뉴스

공유 인쇄 목록

잊히고 방치되는 항일독립 문화유산

공감시대 인터뷰

| 2018. 08. 14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EBS FM 공감시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EBS에 있습니다.

======================================================

■ 방송 : EBS 라디오 FM 104.5 (18:00 - 20:00)
■ 진행 : 최영일 앵커
■ 대담 : "잊히고 방치되는 항일독립 문화유산"(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해마다 일제에 맞섰던 독립운동의 흔적들이 발굴되고 있지만 이중 상당수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 이 불편한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심지어 안내표지판 하나 없이 쓰레기더미에 파묻혀 있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 공감인터뷰에서는 내일 광복 73주년을 맞아 방치되고 있는 항일유적의 실태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을 연결하겠습니다. 황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황평우> 네, 안녕하세요.

최영일> 소장님 먼저 항일독립 문화유산이라고 하면 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황평우>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서대문 형무소 가면 유관순 열사께서 항거하다가 돌아가신 장소 있죠? 그런 것이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곳이고, 종로 쪽 걷다 보시면 보신각 앞에서 만민공동회를 했던 일제항거의 터, 그리고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던 우리 열사들, 그리고 종로에서 여러 애국항일운동을 했던. 그러니까 생활부터 큰 운동까지 했던, 그리고 외국으로 나가서 보면 만주나 항일 무장운동을 했던 곳까지 너무나 다양하게 남아있죠.

최영일> 그래요. 수원 외곽에 나가면 제암리교회 같은 것도 있고요.

황평우> 물론이죠. 그렇습니다.

최영일> 그런데 지금 항일유적들 상당수가 ‘관리가 부실하다’ 이런 비판이 많던데요. 방치되고 있는 유적지가 많다는 얘긴데 파악되고 있는 실태는 어떻습니까?

황평우> 우리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지 약 110년, 120년 정도가 됐고 그동안 일제에 항거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여러 활동들이 있었는데요.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유적이나 현장의 사적지를 보면 겨우 수백 건 정도밖에 안 됩니다. 수치상으로 말씀드리기 애매한 부분이 있는데 몇 백만 건의 항일투쟁이 있다면 현재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장소는 한 2,300건밖에 되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100만분의 최영일> 정도나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을까요?

최영일> 긴 역사 동안 우리 민족 대다수가 크고 작은 저항을 했을 테니까 말이죠.

황평우>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서구 유럽 같은 경우 프랑스 파리혁명도 하고 근대화 과정을 거쳤지만 우리는 그 과정 대신 항일운동을 했다는 거죠. 그것이 우리의 근대화고 우리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역사인 거죠. 

최영일>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아픔이자 수난의 시절일 텐데요. 조국을 위해 헌신했던 애국선열들의 정신이, 그 흔적들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우리가 너무 많은 유적지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관리되지 않는 건가, 한 번 여쭙겠습니다.

황평우> 첫 번째는, 사실 정치권에서 잘못했다고 봐야겠죠. 무슨 얘기냐면 사실 우리 항일운동은 진보적인 쪽에서 했던 경우가 굉장히 많고요. 심지어는 우파 진영에서 활동했던 분들 중 대표적으로 김구 선생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극소수의 우파들을 보면 이승만을 찬양하면서 김구 선생까지 부정하고 있어요. 무슨 말씀이냐면 여태까지 해방 이후에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그런 정치적인 관련에 있어서 독립운동의 유적지들이 정치적으로 파멸되고 매몰됐었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두 번째 현재 항일운동 유적지를 관리하는 데가 보훈처예요. 국가보훈처. 그런데 본래 역사적인 유적지를 관할하는 데는 문화재청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문화재청과 보훈처가 따로따로 관리를 하는 거예요. 문화재로서, 문화유적으로서 관리하려면 국가기관의 통합된 관리가 필요하지 않느냐. 보훈처가 일관하든지 문화재청이 일관하든지.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가 과거에도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잘못했지만 현재까지도 잘못하고 있는 게 관리의 국가주체가 보훈처와 문화재청으로 나뉘어져있다는 것, 그러니까 유기적으로 관계가 안 되고 있고요. 또 독립유공비 같은 경우 기획예산처에서 예산을 줘서 관리하게 해야 되는데 예산도 없다. 그러니까 총체적인 부실이라고 봅니다.

최영일> 지금 말씀 들어보니까 뭐 독립운동처라도 생겨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황평우> 그렇죠.

최영일> 그런데 국내뿐 아니라 우리 독립운동사는 해외까지 뻗쳐있지 않습니까. 해외 곳곳에 독립운동 유적이, 중요한 데가 대표적으로 상해 임시정부 떠올리실 텐데 이런 곳들의 사정은 어떻습니까?

황평우> 비참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상해나 중국 쪽에 임시정부 처소 몇 군데를 보존했다고 하는데요. 엄밀하게 보십시오. 우리가 백몇십 년 동안 일제의 탄압을 피해 중국이나 이런 쪽에서 항일운동이나 무장투쟁, 또 무장투쟁이 아닌 정서적인 운동을 했던 것이 수백만 건이 되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조사한 걸 보니까 겨우 24나라 중 905개 정도 있습니다만 저는 백만 건이 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또 상해임시정부 같은 경우 임시정부 처소라도 남아있지만 북간도나 이런 곳을 가보면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곳은 완전히 흔적이 없는 상태예요. 우리는 여러 가지 형태로, 예를 들어 사회주의운동에서의 항일운동, 민주주의 개념으로서의 항일운동 이렇게 나누지만 어쨌든 다 독립을 위해 운동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과거 정부는 진보진영에서 운동했던 건 배척해버리고 무장투쟁 했던 것은 일제한테 반항했다고 배척해버리고 그냥 오로지 온순하게 운동했던 것만 인정하고 그나마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거죠.

최영일>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더 속상한 대목은 또 친일파 기념물들은 그냥 버젓이 서있다고 하네요?

황평우> 이건 정말 말하고 싶지 않은 건데요.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가 친일청산이 안 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간단하게 말할게요. 최근 모 공공기관의 원장인가 부원장이 친일파 자제였어요. 실제로 회식장소에서 일본천황 만세라고 했던 거 기억나시죠? 이런 거예요. 

최영일> 소장님, 시간관계상 끝으로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결국 오늘 우리가 되새겨야 할 게 더 많은 항일유적을 발굴, 보존하는 일이 본질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담긴 가치와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인데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씀주시겠어요?

황평우> 첫째로 관심을 좀 많이 가져주시고요. 아픈 기억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습니다. 아픈 기억이나 기억해야 할 기억들을 잘 찾아서 기억하고, 당대보다는 후손들을 위해, 이런 상처를 대물림하지 말자는 차원에서라도 현재 우리가 잊었던 독립운동 유적을 잘 관리하고 가꿨으면 좋겠습니다.

최영일> 알겠습니다. 지금 방대한 작업을 하고 계신데 다음에 또 시간 여유를 가지고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황평우> 네, 감사합니다.

최영일> 지금까지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의 황평우 소장이었습니다.
/ EBS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