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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의 역사> 전하지 못한 편지

책 밖의 역사

전하연 작가 | 2016. 06. 20

[EBS 저녁뉴스]

[EBS 뉴스G]

6·25 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66년이 되었지만 

전쟁의 상처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데요. 

오늘 ‘책 밖의 역사’에서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25 전쟁 당시 열여섯의 나이로 전쟁에 참전했던 

한 소년의 편지에 대해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10대 초반의 중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서울 등 전국의 학생들은 

‘자진’해서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했습니다. 


하지만 전쟁 발발 후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한 북한군은 

계속 남하하며 순식간에 낙동강에 이르렀습니다.


포항은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이었는데요,

포항여중은 이 방어선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당시 포항여중은 학도병 71명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군번도, 계급도 없었지만 

북한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당시 열여섯 살이었던 

서울동성중학교 3학년 이우근 학도병도 

이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편지>

1950년 8월 10일 목요일 쾌청.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

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 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수의(壽衣)를 생각해 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켜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학도병 이우근

  

이우근 학도병은 

끝내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편지를 쓴 다음날 전투에서 숨졌습니다. 


이 편지는 그의 옷 속 수첩에서 발견됐습니다. 

   

포항여중전투에서 학도병 71명은 

끝까지 남아 교전을 치렀지만 48명이 전사했고, 

23명이 부상을 입거나 행방불명 또는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투혼으로 

육군 3사단과 포항 시민들은 

큰 피해 없이 철수할 수 있었고,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 기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전하연 작가 ebsnews@ebs.co.kr / EBS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