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뉴스

공유 인쇄 목록

<책 밖의 역사> 콜럼버스, 7년의 기다림

Books

전하연 작가 | 2015. 11. 02

[EBS 저녁뉴스] 

[EBS 뉴스G]

\최근 미국에서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한 날을

기념하는 ‘콜럼버스의 날’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항해를 떠나기까지 

무려 7년간 후원자를 찾아야 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오늘 ‘책 밖의 역사’에서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1485년 서른네 살의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2세에게 

자신의 항해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아시아로 가는 서쪽 항로를 찾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겠다며 국왕에게 후원을 요청한 것인데요,

  

당시 유럽은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비단과 향신료는 

육로인 실크로드를 통해 수입되어

유럽에서 중요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는데요.

  

1453년 '오스만 튀르크'가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실크로드를 통한 교역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콜럼버스가 동양으로 가는 서쪽 항로를 확신하게 된 건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인 토스카넬리의 

지도와 편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는 이 지도와 자료를 분석해 

유럽에서 아시아까지의 거리를 5천 680km로 추정합니다.

  

포르투갈의 국왕과 전문가 위원회는 

콜럼버스가 계산한 항해 거리가 너무 짧다며 

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게다가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 남쪽으로의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면서 

콜럼버스의 계획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고향인 제노바, 베네치아, 

그리고 영국에도 후원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항해의 후원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콜럼버스는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 1세 여왕을 만났습니다.

  

여왕 역시 그가 계산한 짧은 항해 경로를 의심했지만,

단번에 거절하지 않고, 자신이 고민하는 동안 

콜럼버스가 본국에 머물며 

항해 계획을 좀 더 다듬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콜럼버스는 여왕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마침내 콜럼버스는 기다리던 후원을 약속받게 됩니다.

  

후원자를 찾기 위한 7년여의 노력. 

그리고 기다림 끝에 1492년 8월 3일, 

콜럼버스는 세 척의 배를 이끌고 출항했습니다.

  

콜럼버스 일행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과 

무역풍에 대한 콜럼버스의 풍부한 지식은

대서양에서 성공적인 항해를 하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스페인을 떠난 지 약 2개월 후

콜럼버스는 오늘의 바하마 제도의 한 섬에 도착했습니다.

  

“콜럼버스의 명성은 목적지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닻을 올렸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다.” 

- 빅토르 위고 

전하연 작가 ebsnews@ebs.co.kr / EBS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