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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의 역사>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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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연 작가 | 2015. 09. 21

[EBS 저녁뉴스] 

[EBS 뉴스G]

가을을 맞아 EBS뉴스에서는 새 코너 ‘책 밖의 역사’를 

준비했습니다. 책 속에는 없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이야기들을 소개해 드릴 예정인데요, 이를 통해 인류의 숨겨진

수많은 발자취를 돌아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살펴볼 계획입니다. 오늘 ‘책 밖의 역사’는

‘마틴 루터 킹’입니다.

 

[리포트]

 

1965년 3월 미국 ‘앨라배마 주’의 ‘셀마’ 시

 

흑인 시위대 600여 명이 80번 고속도로를 따라 

‘셀마’에서 ‘몽고메리’로 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흑인의 투표권을 요구하기 위한 평화 행진이었습니다. 

  

미 수정헌법 제15조는 

1870년부터 흑인 투표권을 명시했지만 

현실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당시 셀마는 흑인이 인구의 반을 차지했지만

그 중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1%에 불과했죠. 

  

시위대는 앨라배마 주의 행정수도인 몽고메리로 가서 

주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엔 무장한 경찰들이 배치되어

시위대를 무차별로 폭행했습니다. 

  

부상자가 속출한 이날은 ‘피의 일요일’이라고도 불립니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지

4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경찰의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비극적인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 킹 목사는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이틀 뒤인 3월 9일

킹 목사는 비폭력 행진을 재개합니다. 

  

그렇게 다시 찾아온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하지만 무력 제압도 불사하겠다는 경찰의 경고에 

어쩔 수 없이 철수하게 되죠.

  

그날 밤.

행진에 동참한 백인 목사 제임스 리브가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고 

사망에 이르는 참극이 벌어지고 맙니다. 

  

하지만 킹 목사는 끝까지 비폭력의 원칙을 고수하며 

다시, 사람들과 함께 걷기 시작했죠.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은 

연방군을 파견해 킹 목사의 비폭력 행진을 호위하도록 

지시합니다.

  

나흘 뒤, 약 2만 5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대가 

무사히 몽고메리에 도착했습니다.

  

이 행진은 5개월 뒤 미국 연방 의회에서 

‘투표 권리 법’이 통과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법이 통과됨으로써 

흑인들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죠. 

  

지난 3월 셀마 행진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서 열렸습니다.

  

기념식에 참석한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당시 셀마 행진에 참가한 이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호명한 뒤,

차별 없는 미국을 만들려는 그들의 노력은 승리했고

이 사건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곳에서의 그들의 행동이 오랫동안 울림을 주는 것은 

비폭력이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종 차별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피의 일요일 이후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셀마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하연 작가 ebsnews@ebs.co.kr / EBS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