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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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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신년특선영화 <닥터 지바고>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014.12.23 14:25
조회수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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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신년 특선 영화

부제: 닥터 지바고

방송일:  * 닥터 지바고 1부: 2015년 1월 1일 (목) 오후 2시 10분

              * 닥터 지바고 2부: 2015년 1월 1일 (목) 오후 4시

원제: Doctor Zhivago

감독: 데이비드 린

출연: 오마 샤리프, 줄리 크리스티

제작: 1965년 / 미국

나이등급: 15세


줄거리:

(1부)

어린 유리는 양친을 잃고 유복한 크로메코 부부에게 맡겨진다. 유리는 의학을 전공하며 시를 쓰는 청년으로 성장하고 크로메코 부부의 딸인 토냐와 사랑을 키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전차에서 우연히 라라와 스쳐지나간다. 라라는 의상실을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죽은 아버지의 친구인 빅토르 코마로프스키의 재정적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17세의 대학생이다. 그러나 빅토르와 라라의 어머니는 내연의 관계였고 빅토르가 라라에게 눈을 돌리자 라라의 어머니는 자해 소동을 일으킨다. 그 일 때문에 은밀히 왕진을 오게 된 유리는 또 한 번 라라를 보게 된다.

라라는 볼셰비키 혁명을 꿈꾸는 열혈 청년인 약혼자, 파샤와의 결혼을 서두르고 빅토르와의 다툼 끝에 순결을 잃는다. 라라는 상류층 인사들의 성탄절 파티장을 찾아가 빅토르를 쏘는데 그 자리에 있던 유리가 빅토르를 치료해준다. 이로써 두 사람은 세 번째로 스쳐간다.

얼마 후, 유리는 토냐와 결혼하고 라라는 파샤와 결혼해 각자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곧 1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둘은 후퇴하는 러시아군 대열 속에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이 귀향하기도 전에 러시아 내전이 터지고 둘은 한 임시 야전 병원에서 6개월간 의사와 간호사로 일한다. 그러면서 둘은 좋은 동료이자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각자의 배우자에게 충실하기로 하며 헤어진다.

(2부)

모스크바로 돌아온 유리는 집이 붉은 완장을 두른 사람들에게 점령당한 것을 보게 된다. 기근과 빈곤, 혹한이 러시아를 덮치고 땔감을 훔치던 유리는 경찰이 돼있는 배다른 형제, 예프그래프를 만나게 된다. 예프그래프는 당이 유리의 시를 싫어한다며 시골로 도망쳐 숨어살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유리는 가족을 데리고 열차에 오른다. 도중에 암살범으로 오인돼 라라의 남편인 파샤와 마주치기도 하지만 유리와 가족들은 무사히 바리키노로 간다. 그곳에서 직접 땅을 일구며 살아가던 유리는 어느 날 도서관에 갔다가 라라와 재회한다. 유리는 라라와 밀회를 거듭하며 괴로워하다 라라에게 이별 선언을 하고 돌아오던 중 빨치산에 납치된다. 2년 넘게 빨치산에게 끌려 다니다 탈출한 유리는 바리키노로 돌아가던 중 가족들이 떠났다는 얘기를 듣는다. 유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라라를 찾아가고 그녀의 보살핌 속에 건강을 되찾는다. 그리고 둘의 사이를 알고 있던 토냐가 보낸 편지를 읽는다. 갑자기 빅토르가 찾아와 라라와 유리에게 도와주겠노라고 말하지만 둘은 이를 거절하고 바리키노의 별장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유리는 라라를 주제로 한 시들을 쓰며 시인으로서의 생활을 만끽하지만 파샤의 죽음으로 라라의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유리는 라라와 그녀의 딸을 빅토르에게 맡긴다.


주제:

영화 <닥터 지바고>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55년에 완성됐지만 볼셰비키 혁명을 불순하게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소련에서는 출판이 금지됐고 파스테르나크는 작가동맹에서 제명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1957년 이탈리아에서 첫 출판된 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

작가가 의도했던 아니든 소설 속 주인공 닥터 지바고와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비슷한 인생을 살았다. 둘은 제정 러시아의 공산화와 양차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적 시대를 살았으나 정치나 혁명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문학과 예술에 몰두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들의 작품은 정치적인 문제를 일으켜 본인들을 괴롭힌다. 또한 체제전복과 혁명, 그에 따른 반동이란 잔인한 시절을 살면서도 끝까지 조국에 남기를 선택했다는 것 역시 공통점이다.

이렇듯 <닥터 지바고>는 불안전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혁명과 전쟁 속에서 사라져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시인인 주인공을 통해 예술적 감성을 지닌 개인의 인생사를 그리면서 예술가도 혁명가도 죽음을 피할 순 없지만 순수한 열정이 담긴 예술은 시대를 넘어 불명의 생명력을 지님을 보여준다.


감상 포인트:

데이비드 린 감독은 일찍이 <위대한 유산>, <올리버 트위스트>로 소설을 영화화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증명했으며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강의 다리>로 전쟁과 한 인물의 연대기 연출에 뛰어남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 혁명과 지바고란 인물의 일생을 다룬 <닥터 지바고>는 그의 역량을 한껏 펼쳐 보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제작된 1960년대는 냉전이 한창이었고 소련에서의 영화 촬영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시대였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대부분의 장면을 촬영한 뒤 핀란드에서 겨울 장면들을 촬영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각본가 로버트 볼트, 작곡가 모리스 자르, 촬영감독 프레디 영, 오마 샤리프와 알렉 기네스까지 그간 함께 작업했던 스태프와 배우들을 기용했기에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연출을 할 수 있었는데 특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익스트림롱숏으로 보여주는 설원의 풍광은 잊지 못할 감동을 안겨주었고 영화사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전설이 됐다. 촬영 이외에도 오스카에서 각본상, 작곡상, 미술상, 의상상의 5개 부분을 수상한 <닥터 지바고>는 한때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대작 서사 영화들 중에서도 최고의 완성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감독 : 데이비드 린

1908년 영국의 엄격한 퀘이커 교도 집안에서 태어난 데이비드 린은 고등학교를 졸업 후 회계사인 아버지 밑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의 방은 영화 관련 서적으로 가득했고 주급 5파운드를 받으며 TV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촬영장의 슬레이트 보이로 시작해 편집과 촬영 등 여러 가지 일을 배우게 된다. 그러다 뉴스 영화 제작사로 옮겨 편집기사로 일했는데 당시는 2차 대전 중이라 짧은 시간 안에 전쟁에서 공수된 기록 필름을 편집하는 일이 많았다. 그는 1942년 전쟁 홍보 영화인 <토린호의 운명>을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한다. 그 후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과 <올리버 트위스트>를 스크린으로 옮기며 탄탄한 연출력을 인정받는다. 1955년 캐서린 헵번을 기용한 멜로드라마 <여정>을, 1957년에는 알렉 기네스를 기용한 전쟁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발표하며 섬세함과 대범함을 모두 지닌 감독으로 명성을 쌓았고 이 영화로 첫 번째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1962년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두 번째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한다. 1965년에는 <닥터 지바고>를 발표하면서 세 편 연속으로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1970년 발표한 <라이언의 딸>은 상업적인 실패는 물론 평단에서도 ‘거장의 객기’라는 혹평을 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세월이 가면서 점차 그 진가를 인정받았고 데이비드 린 영화의 완성판이란 평가를 받게 된다. <라이언의 딸>이후 무려 14년 뒤인 1984년, 77세의 노장이 된 데이비드 린은 <인도로 가는 길>을 통해 녹슬지 않은 연출력과 그만이 담아낼 수 있는 영상미학을 보여주며 돌아온다. 그리고 1991년 영화 <노스트로모>를 작업하던 중 사망했다.

주연 : 오마 샤리프

1932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오마 샤리프는 레바논계 시리아 기독교신자였다. 카이로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후 아버지와 함께 목재사업을 하다가 1953년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했는데 뜻밖의 큰 인기를 끌게 되고 몇 년 뒤에는 할리우드로 진출한다. 그러나 이집트의 인기 배우란 타이틀은 큰 쓸모가 없었고 이런저런 단역에 출연하다가 1962년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아랍인 부족장 역을 맡아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자리를 잡게 된다. 오마 샤리프의 연기 인생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감독, 데이비드 린의 차기작인 <닥터 지바고>였다. 이 영화를 통해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할리우드에서 비영어권 출신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주연 자리를 꿰차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가 된다. 그러나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출연한 영화 <퍼니 걸> 때문에 그는 고향인 이집트에서 배척당하게 되는데 당시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적대 관계에 있었고 바브라는 대표적인 유태인 연예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오마 샤리프는 유태인과 작업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다.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 등을 구사하는 그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으며 프로 브리지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60년대 이후에는 이렇다 할 만한 대작에 출연하는 일은 뜸해졌지만 여전히 부드러우면서도 남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배우의 아이콘으로 그 명성을 유지했으며 노년에 들어선 지금도 꾸준히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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